202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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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의 습관화
[28글] 월말이 되면 온갖 정산 건으로 정신이 없다. 받을 돈, 줄 돈을 엑셀로 정리하느라 월의 마지막 일주일은 밥때를 챙기기 힘들 정도다. 10월의 마지막 날, 여느 때처럼 바쁜 가운데 노트북이 버벅대더니 ‘툭‘ 블루스크린이 떠버렸다. 심장도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하다.오류라니, 오류라니! 서둘러 노트북을 재시동 후 파일을 확인하니, 저장하는 것도 잊고 한창 피치를 올리며 작성하던 엑셀 수식이 온데간데없다. 30분 분량 가까운 업무가 사라졌다. 한 번에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어떤 문서의 어떤 내용까지 업데이트가 되었는지 기억이 뒤엉켜 버렸다. 낭패다. 업무 리스트를 다시 확인하고 아까 그 자리까지 돌아가는데 1시간을 더 써야 할 판이다. 오늘 새삼 깨닫는다. 사무직의 만고불변의..
2024. 10. 31. -
단점을 먼저 보는 사람
[27글]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거나 혹은 소홀해지거나 하는 계기들이 있다. 보통 사소하게 던지는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나 의례 던지는 평소 인사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나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고, 이렇게 그에 대한 경험치가 누적되면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성격, 태도, 관점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시비라도 걸듯 '살이 쪘네? 관리 안 하냐?', '염색 좀 해라, 머리가 그게 뭐냐?', '그 안경 좀 쓰지 마, 만화 캐릭터 같아' 등의 말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친근감의 표시? 아니다, 그런 사람의 부류는 앞으로도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그런 태도로 대하는 부류의 사람일 뿐이다. 단점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 있다. '넌 이게 문제야..
2024. 10. 31. -
오블완 챌린지
[26글] 오랜 시간 네이버, 브런치, 심지어 워드프레스로 블로그까지 구축해 가며 블로그를 운영했다가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한 블로그가 꽤 된다. 소싯적에는 네이버 파워블로거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이쪽 분야가 내 업이 되면서 정작 내 글을 안 쓰게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기도 했다. 우리 집 꼬맹이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니... 그래서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한 지 갓 한 달을 넘기는 중이다. 적당한 글감을 찾기 힘든 요즘, 간만에 글감 하나를 찾아 블로그에 들어오니 '오블완 챌린지'를 시작한다는 공지가 떠 있다. 마침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겠다... 이거 완전 아다리가 착착 맞는 느낌!? 공지를 확인하..
2024. 10. 30. -
설렁탕의 계절
[25글]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얼죽아를 달고 살던 내가 웬만하면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떡볶이, 햄버거 같은 음식보다 뼈해장국, 갈비탕, 삼계탕, 순댓국 같은 국물 있는 음식을 찾게 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새삼 '나이 먹음'이 느껴진다. 오늘 날도 우중충하니 나잇값을 하려는 듯 설렁탕이 몹시도 당겼다. 그래서 회사 상무님을 꼬드겨 설렁탕을 먹으러 나섰다. 상무님은 음식의 호불호가 강해 꼭 가서 먹어야 하는 곳으로만 가는 양반이라 멀리 가는 게 귀찮고 피곤하지만, 그와의 식사는 내 카드를 안 쓰므로 매우 환영이다. 설렁탕만 먹어도 되는데, 수육까지 주문했다. 이걸 다 먹으면 오후에 밀려오는 졸음과의 한판승부가 예상됐지만, 수육은 못 참지! 절인 ..
2024. 10. 29. -
출근길 엔딩
[24글]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 보면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퇴근길은 선택이 좀 쉬운데, 막히는 시간이면 강변북로-구리포천고속도로 루트로, 안 막히는 시간이면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의정부로 들어간다. 출근길은 강변북로에서 강남으로 진입하는 세 가지 루트가 있다. 영동대교, 성수대교, 한남대교. 어느 다리로 건너는지에 따라 도착시간이 확연이 달라진다. 영동대교는 진입구간에 2km 가까이 차들이 늘어서 있다. 그래서 좀 야비하지만 살살 달리다가 정신줄 놓고 있는 차가 있으면 그 사이로 살짝 들어가면 세이프. 진입금지 구간에서 들어갔다가 딱지를 두 번 떼보고 그 이후로는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나이스하게 끼어들 수 있는 경우에만 들어간다. 빡빡하게 빈틈이 없어서 무리겠다 싶을 때는 과감히 성수대교로..
2024. 10. 28. -
사람의 중요성
[23글] 회사 건물에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걸려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광고업은 기획력과 창작력을 요하는 업이지만, 프로젝트의 수만큼이나 투입하는 인력도 매우 중요하다. 하고 싶어도 진행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경험자가 없어서 드롭되는 프로젝트도 있다. 제안을 할 때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지를 인력 보유 규모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정현종 시인의 시는 광고회사 현판에 걸려있기에 가장 적합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이쪽 업계는 퇴사와 입사가 잦은 곳이다. 이쪽 업계에서 몇 회사를 다녀본 경험 상 업무량이 많아서, 잦은 야근 때문에, 광고주의 지나친 갑질 등 업의 특성으로 인해 회사..
2024. 10. 26. -
태권도 보내기
[22글] 아이들이 어릴 때 태권도 학원을 보내려고 무던히 애쓰던 때가 있었다. 나도 어릴 적에 태권도를 배우러 다녔기에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다니게 하고 싶어서 온갖 감언이설(?)로 꼬셨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누구 닮아 그리 고집이 센지.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이제 슬슬 태권도를 다녀야겠다며 학원 좀 알아봐 달라는 요청(?)에 집 근처 태권도장을 알아보고 보내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둘째는 태권도에 제법 열심이다. 무슨 대회가 열리니 보내달라고도 하고, 집에서는 수시로 다리찢기와 발차기, 품새를 시전한다. 가끔은 "유치원 때 시작할 걸, 그랬으면 지금은 1품을 땄을텐데..." 하고 후회도 한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지난 번 철원 주상절리길..
2024. 10. 24. -
이직 1년
[21글]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자정이 넘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오늘이 이직한 회사에서 꼭 1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이란 시간. 큰 의미 부여를 하기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말 바쁘게 살아온 나에게 '한 해 동안 수고했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웃프게도 종일 바쁘게 보내느라 1주년이라는 것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1년 전, 감사하게도 추천을 받아 좋은 기회로 중견 광고회사에 들어왔다. 그간 쌓아오던 커리어를 잘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업무, 지난한 결재 과정과 기다림, 부지불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업무요청, 꿈에서도 나오는 엑셀 작업 등이 몹시도 힘에 부쳤다. 처음 6개월간은 때려치울까도 고민했지만, 40대의 이직은 쉽지 않기..
2024. 10. 24. -
직장인의 일탈
[20글] 얼마 전, 점심시간에 팀장과 팀원 셋을 데리고 한강을 간 적이 있다. 평일에 이렇게 점심 나들이를 하는 게 처음이라며 마냥 신이 났나 보다. 부서장하고 나왔으니 조금 늦게 들어가도 뭐라 할 사람도 없겠다... 둔치 근처의 편의점에서 간식까지 사 먹으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속 아주 작고 귀여운 일탈. 몇 년 전만 해도 간간히 한강도 나오고, 저녁에 술 한잔을 하거나 주말에 집에 초대해 밥도 먹고 그랬다. 이제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다 뭐다 해서 이런 제안들이 소위 '강제'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라 함부로 어딜 가자, 밥을 먹자 하는 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직급이 높은 것도 한몫하겠지만. 회사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삶의 ..
2024. 10. 23. -
30일의 밤
[19글] 예전에 MCU가 '로키'를 통해 멀티버스 세계관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 기대가 컸던 나는, 정작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뭔가 정리되지 않는 흐름에 결국 이해하기 반, 오류찾기 반의 느낌으로 겨우 시즌 1을 마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이번에 정주행 하게 된 '30일의 밤'. 진정한 영화적 멀티버스를 이해하려면 이 '30일의 밤'을 꼭 시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들숨날숨 한번에 에피소드 한편씩 쉴 새 없이 몰아치며 감상했다. 올해 최고의 OTT 드라마, 아니 어쩌면 인생작으로 꼽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선택이 항상 옳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훗날 그 선택들이 온전한 나로서 완성되어 가는 모든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나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게 될까. 늘 3인칭 시점으로..
2024. 10. 23. -
개명
[18글] 첫째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잘 짓는다는 작명소를 찾아 아이 이름을 부탁했다. 남자아이 이름 같았지만 불만없이 OO이라는 이름을 받고 쓴 지 3년이 되었을 때, 둘째가 태어나 같은 작명소에 이름을 또 부탁했다. 작명가가 대뜸 하는 말이 "OO 어떤가요?"란다. 첫째 이름도, 둘째 이름도 OO? 어이가 없었다. 그 작명가를 통해서 이름을 지은 많은 아이들이 성의 없이 던진 OO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 결국 둘째 이름은 내가 짓고, 언젠가 첫째가 원할 때 이름을 바꿔주기로 했다. 코로나 시기, 집에서 줌 수업을 하는데 딸아이 앞으로 보내오는 교구들이 죄다 파란색이었다.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은 분홍색을 받았단다. 문화센터 같은 곳의 수업을 신청해도 마찬가지, 선생..
2024. 10. 15. -
정년이
[17글] 역사극을 좋아하는 첫째가 며칠 전부터 호들갑이었다. 눈물콧물 쏟으며 너무도 재미있게 본 '미스터션샤인'에서 주연을 맡았던 김태리 배우가 드라마를 새로 시작하는데,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니까 봐도 되는 거죠?'라며 간절한 눈빛으로 허락을 기다렸다. 영화를 좋아하는 첫째는 미스터션샤인을 비롯해 광해, 천문, 자산어보, 말모이, 아이캔스피크 등을 보면서 다양한 시대의 역사극에 관심이 제법 많아졌는데, 이번에 보고 싶은 드라마는 '정년이'란다. 처음에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지만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길래 허락을 하고, 주말에 가족이 함께 본방송 첫 화를 시청했다. 첫 화는 내가 더 흥미롭게 시청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인데, 작가는 어떻게 '국극'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하는 ..
2024. 10. 15. -
연봉인상 부적
[16글] 출근 전, 딸내미가 '아빠에게 줄 선물이 있어요'라며 부적 한 장을 건네주었다. 직접 만든 '연봉인상' 부적이란다. 뒷면에는 '돈이 올라, 연봉인상' 메시지가 가득 쓰여 있다. 분명 '아빠가 좋아하겠지? 히히' 이러면서 만들었을 게 뻔했다. 왜 아빠가 연봉이 올랐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힘들게 일하니 연봉을 많이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기특한 녀석. 언젠가 책에서 '돈을 좇지 말고, 일을 좇아야 한다'라고 쓰여있던 걸 본 적이 있다. 일을 좇다 보면 돈은 따라붙는다고. 이 문구는 내가 업과 커리어를 대하는 기본 자세가 되었다. 그래서 지난 회사에서 3년이나 연봉이 동결되었지만 나름의 대의(?)를 품고 있었던지라 회사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하며 묵묵히 일만 보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 선택과 ..
2024. 10. 11. -
쏘울시티 강릉
[15글] 1년에 한 번, 꼭 강릉에 방문한다. 강원도와의 인연은 군생활을 했던 속초에서 시작했다. 속초에는 서울에서 양양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부터 최근까지 숱하게 방문했지만 이상하게도 방문자 이상의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은 편안한 우리 동네 느낌이라 좋다. 올해는 이직 후 바쁜 통에 아직 여름휴가도, 강릉도 가지 못하다가 지난 추석 마지막 날이 돼서야 이래서는 안 되겠다며 강릉 안목해변으로 내달렸다. 이제 함께 여행 다니는 걸 조금 귀찮아하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 녀석들이 아직은 바다에 발 담그는 걸 좋아해서 군말 없이 아빠가 가자는 강릉으로 잘 따라와 줬다. 고작 하루 반나절의 빠듯한 일정을 번개같이 계획하고, 서둘러 당도한 강릉의 안목해변은 여전히 푸..
2024. 10. 10. -
무취향이 어때서
[14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아내와 산책을 나간다. 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을 쭉 걸으며 서로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아내는 자기가 너무 취향이 없이 산 것 같아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음악도 그냥 나오는 대로, 영화도 그냥 틀면 나오는 것으로, 사람도 오다가다가 마주치고 헤어지는 대로 살았다는 말이다. 애써 매달리거나 피하지 않은 것일 뿐인데 '취향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난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다. 스무 살 때 처음 들은 박정현 누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나에게 원톱이고, 공포영화는 죽었다 깨나도 보지 않고,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선이 분명하다. 사람을 가리는 걸 취향이라고 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게 특별히 좋았던 기억은..
2024. 10. 9. -
자동차 액땜
[13글] 새 차를 산 지 오늘로 꼭 1년이 되었다. 새 회사로 이직하기 직전에 7년 정도 몰았던 경차를 팔면서 고심 끝에 안전을 생각해 같은 브랜드의 SUV로 골랐다. 경기도 외곽에서 매일 고속도로로 출퇴근하다 보니 안전상 경차는 좀 불안했던 터였다. 그동안 운전을 하면서 자잘한 사고는 몇 번 있었지만, 차를 바꾼 지 6개월쯤 된 올해 4월, 내 뒤에서 정신 놓고 운전하던 마세라티에 크게 받혀 차 트렁크 문짝과 범퍼를 새로 갈고, 난 3개월 간 한방병원을 다녔었던 게 그간의 사고 중 가장 컸던 것 같다. 며칠 전 갑자기 타이어 경고음이 울려서 흠칫 놀랐다. 3개월 전에 오른쪽 뒷바퀴에 칼날 같은 요철이 박혀 타이어를 수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꽤 비싼 돈을 주고 '불빵꾸'라는 걸 했다. 찢어진 타이어를..
2024. 10.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