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취향이 어때서
2024. 10. 9.
[14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아내와 산책을 나간다. 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을 쭉 걸으며 서로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아내는 자기가 너무 취향이 없이 산 것 같아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음악도 그냥 나오는 대로, 영화도 그냥 틀면 나오는 것으로, 사람도 오다가다가 마주치고 헤어지는 대로 살았다는 말이다. 애써 매달리거나 피하지 않은 것일 뿐인데 '취향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난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다. 스무 살 때 처음 들은 박정현 누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나에게 원톱이고, 공포영화는 죽었다 깨나도 보지 않고,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선이 분명하다. 사람을 가리는 걸 취향이라고 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게 특별히 좋았던 기억은 없는 것 같다. 뜻하지 않게 '반골기질'을 가진 사람처럼 보일까 봐 전전긍긍하던 적도 있었다. 이런 것이 취향이라면 없는 게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에서는 조용히 쉬는 것이 취향이라, 주말 낮에 위층 할머니 댁에 놀러 온 듯한 손주들의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발소리가 난 무척이나 거슬리지만, 아내는 '주말이잖아, 얼마나 신나겠어 놔둬'라며 참으라고 한다. 무취향은 좋게 보면 관대하다는 뜻도 된다. 좋고 싫음을 특별히 가리지 않으니 마음이 얼마나 편안할까. 오늘 산책을 나가면 전해줘야겠다. 무취향의 당신은 평화주의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