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
-
오블완 완주 실패
[58글] 3주간 열심히 '오블완 챌린지'를 참여했다. 이 지옥같이 바쁜 와중에서도 10~20분씩은 꼭 할애해서 꾸준히 글을 썼는데... 하루를 앞두고 이렇게 허무하게 미션에 실패할 줄이야.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이것도 추억 한 줄로 남을 수많은 오답 중 하나가 아닐까... 하며 애써 괜찮은 척해본다. 그래도 글은 계속된다. 인생의 헛발질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2024. 11. 27. -
바나나 안바나나
[57글] 정기적으로 아침마다 바나나를 들고 출근하는 팀원이 있다. 하나 두 개를 사 오는 게 아니라 8개 정도 달려있는 바나나 송이를 사 온다. 어느 날 '너는 바나나를 좋아하니?' 물으니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역 앞에서 한 송이에 2,000원 밖에 안 해서 사 오게 된단다. 생각보다 싸길래 '오! 2,000원 밖에 안 해? 그럼 내 거도 사와ㅋ' 농담 삼아 던졌더니, 다음 날 아침... 메신저 메시지와 함께 책상 위에 바나나 한송이가 올라와 있다. 회사가 집에서 가까운 것도 아닌데 이걸 들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왔을 걸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맙고, 마음이 짠했다. 그저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걸 보면서 뿌듯해하는 장난기 가득한 이타적인 사람. 이러니 바나나 안바나나?!
2024. 11. 25. -
앗! 통풍
[56글] 내가 유일하게 앓고 있는 지병이 있다. 통풍이다. 요 며칠, 철야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릎이 욱신거린다. '아, 통풍이다. 이번엔 무릎이구나' 했다. 통풍은 조금만 무리를 하면 다리 쪽 관절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어떨 때는 발가락, 어떨 때는 발목 이렇게 대중없이 찾아온다.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렇게 이번에는 무릎. 예전에 통풍 발작이 있을 때 먹는 약을 처방받아 둔 걸 얼른 찾아 먹었다. 심하게 찾아왔을 때는 3주가 넘게 통풍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운이 좋으면 반나절 정도면 증상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저 기다려보는 수밖에. 야근에, 철야에, 이번엔 통풍이라니.쉽지 않다. 쉽지 않아.
2024. 11. 24. -
수면 부족
[55글] 역대급이다. 광고 촬영 현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새벽에 사무실에 돌아서와 제안서를 쓴다. 하필 2개 제안의 마감일자가 단 하루 차이다. 사무실에서 팀원들은 각자 배정된 부분의 장표를 빼곡하게 채워가는 중이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에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깐 머리를 대면 알람이 울려댄다. 이런 일정은 난생처음이다. 토요일 아침, 도무지 깨지 않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겨우겨우 정신을 차려 옷을 챙겨 입었다. 3일 동안 12시간도 못 잔 상태라 2차 촬영지인 파주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눈치 봐서 차 안에서 쪽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촬영 중간에 광고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팀장에게 뒤를 부탁한다며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쓰다만 제안..
2024. 11. 23. -
고민 많은 딸내미
[54글]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하루 앞둔 주말, 딸내미와 동네 산책을 했다. 아침부터 복작거리며 한참이나 초콜릿을 만들고 학교 반 친구의 수만큼 준비를 마쳤다고 하길래, '우리 산책이나 할까?' 물으니 얼른 쪼르르 따라 나왔다. 얼마 간 걸었을까,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일전에 자기에게 상처를 준 미운 친구에게 초콜릿을 주고 싶지가 않은데 아빠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3가지의 옵션을 주었다. 싫어도 차별하지 않고 주기, 주지 않기, 서운했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주기.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도 삶을 대하는 연습이라고 말해줬다. '아빠, 아빠 말대로 이건 제가 고민하고 결정할 문제네요. 고맙습니다.'라며 오늘 하루동안 고민하고 결정해서 결과는 내일 말해주겠다고 했다. 평소에 야..
2024. 11. 22. -
퇴사하는 이에게
[53글] 올해 1월 새로 비딩 하는 제안 건이 있었다. 입사한 지 3개월이 안 되었을 때라 회사 분위기도 잘 모르던 그때, TFT로 제안팀이 꾸려지면서 각 팀에서 한 명씩 차출되어 몇 사람이 제안서를 함께 쓰게 되었다. 서먹할 틈도 없이 달리던 우리들은 며칠 밤을 새하얗게 불태우며 비딩을 마친 후, 조만간 밥 한 번 먹자고 약속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로 각자의 현업에 치이면서 나는 회사에 적응을 해나갔고, 그렇게 꼭 10개월이 지났다. 오늘 오후에 그때 제안에 함께 했던 제안팀 친구 중 한 명을 만났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며 퇴사 인사를 건넸다. 다른 부서의 사람이라 왜, 어떤 이유로 퇴사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캐물을 위치나 관계도 아니지만, 그때 함께 치열했던 시간이 떠올라 무척 ..
2024. 11. 21. -
은행나무
[52글] 강남 부근 세관사거리에는 가을만 되면 은행나무 열매로 악취를 풍기는 구역이 있다. 잠시 외출을 했다가 그 길을 지나는데 '웬일로 이렇게 깔끔해?' 이러고 나무를 보니, 세상에나... 잔가지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가지가 몽땅 잘려있다. 건물주의 우격다짐이든, 폭발하는 민원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공무원이든 누군가의 분노가 몇 남은 잔가지에 아직 서려있는 듯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오늘은 이걸 소재로 쓸까 고민하다가 챗GPT에게 '은행나무 가지치기'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서 글을 써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의 글은 챗GPT의 글로 갈음하기로 한다. - '은행나무 가지치기'라는 주제로 블로그 타입의 글을 써줄 수 있을까? ..
2024. 11. 20. -
겨울바람
[51글] 그제 내린 비로 마른 가지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남은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젖은 땅에 들러붙은 낙엽을 떼어내느라 아침부터 아파트 앞을 청소하시는 여사님들의 비질 소리가 분주하게 들린다. 11월이고 비도 내렸지만 생각보다 안 춥다 싶었는데,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올라와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훅 들이친다. 아이들이 다니는 아파트 맞은편 초등학교 건물이 눈에 보이자 꼬맹이들은 단디 입고 갔나 걱정을 잠시 했다가 마침 어제 새로 산 패딩을 입혀 보냈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안심이 됐다. 오늘 부는 바람은 그리 세지 않지만 겨울이 물씬 담겨있다. 문 앞을 나설 때 '헙!'하고 숨을 잠시 멎게 하는, 춥다기보다 뚝 떨어진 기온으로 놀람에 가까운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딱 그 정도의 상쾌한 겨..
2024. 11. 19. -
밤 운동
[50글] 퇴근을 한 후 가벼운 옷차림으로 밖을 나선 지 한 달이 넘었다. 퇴근을 하면 대게 밤 9시 이후지만 그래도 30분씩 집 근처 산책로를 뱅글뱅글 걷는다. 처음에는 '생전 운동 안 하던 얘가 왜 이러는 거지?'하고 거부하던 몸뚱이가 무릎과 발목을 고장내기도 했지만 괜찮아지면 또 나가고를 반복하니 이제 몸이 좀 적응을 한 듯싶다. 아내와 함께 산책을 나가는 날이면 최근 못 나눈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혼자 나갈 때면 이어폰을 챙겨 나간다. 깜빡하고 이어폰을 챙기지 않은 날에는 산책로를 흐르는 물소리와 자박자작 걷는 내 발소리를 들으며 걷는다. 퇴근 후 운전해서 집으로 오는 내내 오늘은 어떤 루트로 산책을 할까 고민이 된 걸 보니 이제 밖을 나서지 않으면 몸이 근질거리나 보다. 집에 도착하..
2024. 11. 18. -
제주식 돼지불백
[49글] 며칠 전 신사역 부근에서 일을 하는 형님을 가로수길에서 만나기로 했다. 애플스토어 가로수길에서 볼일이 있어 나가는 김에 점심쯤 식사 약속을 함께 잡았다. 볼일을 마친 후 형님이 가보고 싶다는 식당이 있다 해서 그곳으로 향했다. 오늘의 메뉴는 '제육볶음'. 제육볶음, 김치찌개, 된장찌개... 회사 근처에는 이런 백반류를 파는 식당이 없다. 예전 회사 근처에는 괜찮은 백반집이 있어 하루 걸러 한번씩 제육볶음으로 점심을 해결했는데, 간만의 제육볶음이라니 반갑다. 고기가 제주도에서 온 건지 확인은 할 수 없지만 간판이 '제주식 돼지불백'이다. 이곳 식사류는 딱 제육볶음만 있다. 보통 단일 메뉴로 음식을 내는 식당은 컨셉이거나 이 음식에 자부심이 있는 경우인데, 이 집은 확실히 후자다. 철판에 어느 정..
2024. 11. 17. -
야근
[48글]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회의를 마치고 시계를 보니 저녁 8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허기진 배를 부여잡고 팀원들과 서둘러 회사를 뛰쳐나왔다. 퇴근이면 좋겠지만... 불금이지만... 태산처럼 쌓인 할 일을 두고 퇴근할 수가 없는 처지. 그래도 괜찮다. 오늘의 야근 식사는 삼겹살이니까. 먹기라도 잘 먹어야지. 밖을 나오니 하늘을 보니 보름달이 떠 있다. 하... 달이 휘엉청 떠있는데도 퇴근을 못하는구나. 씁쓸한 현실이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니 누굴 탓하랴. 그래도 밤 깊은 야근은 이제 한 달 정도만 바짝 하면 되니 그에 위안을 삼는다. 겨울 초입인데 완연한 봄 날씨다. 걸쳐 입고 나온 후드티를 벗어 들고, 우리를 따라오는 보름달을 가끔씩 올려다보며 회사에서 좀 떨어진 삼겹살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
2024. 11. 16. -
제안 시즌
[47글] 바야흐로 제안 시즌이 다가왔다. 해마다 11월이 되면 광고대행사는 내년 한 해 먹고 살 농사를 시작하는데, 11월과 12월은 오롯이 제안을 준비하고 발표하는데 시간을 써야 한다. 보통 12월까지 계약이 된 광고주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실무는 실무대로, 시간을 쪼개 제안까지 투입되어야 하는 시간과의 싸움이 시작된다. 예상대로 11월이 되자 제안요청서(a.k.a. RFP)가 쏟아진다. 올해에 이어 계약을 연장하는 '방어 PT'는 물론, 우리 회사와 잘 어울리고, 좋은 레퍼런스가 되며, 수익성까지 괜찮은 '신규 광고주 영입'을 위한 과업을 고른다. 본부에서 진행하기로 한 6개의 제안 건 중, 우리 팀에서는 2개의 제안에 참여하기로 했다. 지난해 처음 수주한 프로젝트의 방어 PT 건과 지난 해 다른 ..
2024. 11. 15. -
군고구마가 제철
[46글] 겨울이 되면 빼놓지 않고 찾는 게 있다. 군고구마. 원래 고구마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는데 군고구마 맛집을 우연찮게 찾은 후로 매년 같은 곳에서 사다 먹는다. 사뭇 추워진 걸 보니 이제 제철이 왔구나 싶다. 논현동 모처의 카페에서 겨울이 되면 군고구마 기계가 돌아간다. 예전 회사가 이 근처라 알게 된 곳인데, 커피를 주문하니 서비스로 주신 군고구마에 매료(?)되어 그 뒤로는 겨울 내 서너 번은 일부러 찾아가 사 먹는 곳이 되었다. 카페 사장님은 마케팅 천재인 게 분명하다. 올해 2월쯤 군고구마 생각에 주문하려고 연락을 하니 '이제 군고구마 끝났어요, 겨울에 다시 합니다'라고 해서 아쉬웠는데, 지난주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궁금해 전화를 하니 막 개시했다고. 그래서 오늘은 구황작물을 애정하는 팀..
2024. 11. 14. -
맵찔이
[45글] 어제는 야근식대로 씹을 거리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렀다. 평소에 잘 사지 않는 과자를 몇 개 주워 담아 계산을 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보니 과자 봉지에 고추가 그려져 있다. 심지어 태국산이다. '아, 이건 내가 못 먹는 거구나, 와이프 가져다줘야지~' 매운 음식을 잘 못 먹는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얼마나 매워요?'라고 물으면 보통 '신라면 정도예요, 신라면 보다 조금 매워요' 정도로 답하는 걸 보니 이게 기준인 듯하다. 나는 딱 신라면 정도가 딱 한계다. 먹을 때 고통스럽고 힘들다. 아, 힘든 것도 힘든 거지만, 배탈 후폭풍이 2~3일을 가다 보니 매운 음식은 가급적 피한다. 예전에 집에 놀러 온 처제와 간장 반, 고추장 반 찜닭을 시켜 먹는데, 내가 매운 쪽에 손을 안대니 처제가 '..
2024. 11. 13. -
선택하지 않은 길
[44글] 살다 보면 과거에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길의 끝에는 무엇이 펼쳐졌을까 하는 궁금할 때가 있다. '수많은 선택들의 모음집' 속에 살고 있는 나는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 말이다. 그런 궁금증은 아마도 전 인류적, 세대적인 공통된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영화나 소설에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다루는 '평행이론'이란 소재는 이제 진부한 클리셰가 되고 있다. 오래전 방송 프로그램 속 A와 B 선택지에서 '그래! 결심했어!'를 외치는 모습은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라면 기억하는 장면일 듯 하다. 가지 않은 길의 끝에 놓은 나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는 모든 이들을 위해 얼마 전 애플TV에서 '30일의 밤'을 시청한 후, 도서관에서 원작 소설..
2024. 11. 12. -
살면서 주운 말
[43글] 간혹 우연찮게 가슴을 울리는 말이나 문장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시쳇말로 '뼈 때리는 글'은 오래도록 강렬하게 남아 내 생각, 행동, 신념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오늘 출근을 하니 책상 위에 빼빼로가 한통 놓여있다. 팀원 중 하나가 두고 간 듯한데, 달력을 보니 다음 주 월요일이 빼빼로데이다. 아침을 잘 챙겨 먹지 않지만 오늘은 특별히 따뜻한 커피와 빼빼로를 함께 먹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오늘 아침도 든든하게 시작한다. 빈 박스를 버리려다 보니 박스에 '어떻게 맨날 잘해요'라고 쓰여있다. '힘내', '파이팅', '넌 할 수 있어' 등의 더 많은 요구를 함의한 뻔한 응원의 메시지가 아니다. 그저 한 문장의 메시지일 뿐인데, 따뜻한 위로가 담겨 있다. '그럴 수도 있지', '너 할 만..
2024. 11.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