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블완
-
늦은 경험이 주는 것
[42글] 살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번쯤 해봤음직한 것도 좀처럼 기회가 되지 않아서 처음 겪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음식의 경우 갑자기 유행을 타는 두바이 초콜릿 같은 생소한 음식이 아닌 이상 누구나 먹어봤음직한 것도 '내가 왜 이걸 처음 먹어보는 거지?' 하는 의외의 경험들이 그렇다. '대한민국 이 좁은 땅덩어리에 여기를 처음 가본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는 유명한 지역이라 일부러 찾아가기도 할 만 한데 말이다. 강원도 속초, 강릉은 숫하게 다니면서 그 아래 주문진은 재작년에 처음 가봤고, 작년에 방문한 여수도 그랬다. 아, 놀랍게도 동대문 DDP도 작년에 처음 가봤다. 지난주에 마포에서 광고주 미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처음 와..
2024. 11. 10. -
모처럼 회식
[41글] 지금 회사에서 담당하는 큰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월 2~3회씩 오프라인 행사를 꼬박꼬박 진행한다. 그만큼 바쁘기도 하고, 내가 담당하고 있는 두 팀에서 여러 개의 프로젝트 소화하다 보니 다 함께 식사할 시간도 좀처럼 나지 않는다. 여느 때처럼 2개월을 준비한 오프라인 행사가 압구정에서 무사히 끝났다. 일이 마무리될 때쯤, 팀장에게 저녁식사는 어떻게 할까 물었더니 이미 잘한다는 양꼬치 집으로 정했단다. 그러더니 "국장님, 지금 하실 거 없으시니 저희 마무리할 동안 가서 자리 좀 잡아주세요!"란다. 역시 우리 강팀장은 계획이 다 있구나... 이런 식으로 요즘 우리 팀은 저녁식사 겸 회식을 해결하고 있다. 흔쾌히(?) 먼저 일어나 막내 직원과 함께 양꼬치 집으로 향했다. 다들 아다시피 요즘은 회..
2024. 11. 9. -
진심 어린 사과
[40글] 기대가 컸나 보다. 사람들 앞에 서자마자 그는 냅다 사과부터 했다.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와 사람들의 질문에 답하는 그를 보면서, 저치는 자기 잘못이 뭔지도, 자기가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도 전혀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기대가 컸던 탓인지 약이 올랐다. 그냥 등 떠밀려서, 요즘 말들이 많으니 그래도 내가 나서야지 했던 걸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시금 곱씹게 하는 순간이다. 지금은 밈이 되어버린 어느 남녀의 대화, '미안해, 뭐가 미안한데?, 다 미안해, 오빠는 그게 문제야'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듣기만 해도 어질어질한 현문우답의 현실. 아이들도 친구에게 사과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엄빠에게 묻고 상의하고, 시의적절한 타이밍을 골..
2024. 11. 8. -
생일 선물 (feat. 아이패드)
[39글] 10월에는 딸아이가 고대하는 특별한 날이 있는데, 바로 자기 생일이다. 10월에 접어드니 일찍부터 '생일파티를 할까? 누구를 부를까?' 등등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생일 즈음이 되어서 딸아이에게 작년에 친구들 모아서 생일파티를 했으니 올해는 가족끼리 보내는 게 어떠냐 물었더니 흔쾌히 좋다 했다. 아내와 아이 생일을 어떻게 해주는 게 좋을지 이야기를 하다가 아이가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고, 이제 곧 중학교에 올라가니 새 아이패드를 사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다.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는 친한 형님에게 연락해서 '이제 중학생이 되는 아이에게 아이패드 선물이란?'하고 물었더니 중학교 때는 몰라도 고등학교 가면 다 하나씩 써야 한단다. 그래서 새 아이패드를 장만해 주기로 결정하고 나니, 이제 ..
2024. 11. 7. -
가을볕
[38글] 지난 주말 아침, 딸내미를 데리고 차를 고치고 왔다. 햇살을 받고 달리니 조금 더운 느낌, 차창을 여니 시원한 바람이 제법 불었다. 선루프까지 활짝 열고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그리고 오늘, 고작 3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아침 온도는 체 5도를 넘지 않는다. 옷장을 뒤적여 얇은 패딩을 꺼내 입고 출근을 했다. 사무실에서는 ‘내일은 영하 2도래! 날씨가 미쳤어'라며 직원들이 호들갑이다. 올해 가을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끝자락인가. 마치 조기종영되는 드라마 같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회사 주변을 산책했는데, 오후에 접어드는 시간이라 그런지 그리 춥지도 않고 가을볕도 좋다. 볕도 좋고 상쾌하니 '이대로 그냥 퇴근해 버릴까?' 싶었다. 오늘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촤라락 떠오르자..
2024. 11. 6. -
글쓰기 롤모델
[37글] 주말에 도서관에 갔다가 예전에 한번 빌렸던 책을 다시 빌려왔다. 작가 쓰무라 기쿠코의 '설레는 일, 그런 거 없습니다'라는 소설인데, 몇 개월 전에 첫 몇 페이지를 읽고 이래저래 바쁘다는 핑계로 반납을 했기 때문이다. 다시 빌린 것은 소설 속 등장인물의 소소한 아침을 꼼꼼하게 표현해 놓은 부분을 다시 읽고 싶어서다. 그때도 '아, 이런 글을 써야 하는데'라며 아내에게 몇 구절을 읽어줬던 기억이 난다. 살면서 롤모델 같은 건 없었다. 특히 거창한 '인생의 롤모델' 같은 건 더더욱. 자존감이 높아서 남의 인생보다 내 인생을 더 가치 있게 여기는... 뭐 그런 것도 아닌 것 같고, 딱히 닮고 싶은 인물이 없었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작가의 글을 보면서 처음 무언가를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
2024. 11. 6. -
살기 좋은 곳
[36글] 개인마다 '살기 좋은 곳'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 집값을 결정하는 '역세권', '슬세권'을 살기 좋은 곳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먹거리나 놀거리가 있는 곳, 혹은 세상 조용한 '숲세권'이 살기 좋은 곳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나의 경우는 '아이를 키우기 좋은 곳인가'가 기준이 된다. 지금 사는 곳으로 이사를 왔을 때, 있는 거라곤 이마트와 코스트코 밖에 없었다. 주변은 여기저기 아파트가 들어서느라 공사가 한창이었고 상권도 좋지가 않아서 외식이라도 하려면 차를 타고 멀리까지 나가야 했다. 그리고 몇 년 새 아파트들이 완공될 때쯤, 가까운 곳에 고속도로 IC가 생기고, 도서관, 주민센터와 보건소도 생겼다. 작년에는 주민센터 옆에 파출소도 들어섰다. 멀지 않은 곳에 대학병원도 2개나 있고. ..
2024. 11. 5. -
걷고 타고 출근길
[35글] 평소 자차로 출퇴근을 한다. 서울 강북에서 신혼집을 차린 후 주머니 사정에 조금씩 위로위로 올라가다 보니 의정부에 자리를 잡게 되었는데, 의정부 택지지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구리-포천 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집앞에 IC가 생긴 후로는 쭉 자차로 출퇴근하는 중이다. 간혹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철야 후 택시를 타고 퇴근하게 되거나 외부 일정 때문에 차를 회사에 두고 퇴근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버스와 지하철로 출근한다. 그런데, 어제는 특별한 이유 없이 빨리 퇴근하고 싶어 조금 이르게 회사를 빠져나와 지하철을 탔다. 퇴근 시간의 도로는 기약 없이 막히다 보니, 칼퇴근을 하려면 대중교통을 타는 게 좋다. 집에서 회사까지 출근길은 자차로 1시간, 대중교통으로 1시간 30분이 걸린다. 오늘은 ..
2024. 11. 5. -
개명(改名)의 추억
[34글] 얼마 전 첫째의 이름을 개명했다는 글을 올린 적이 있는데, 물론 고민의 기간이 있었지만 빠르게 결정하고 진행을 할 수 있었던 건 내 이름을 개명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이 어렵지, 역시 두 번 째는 쉽다. 내 예전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지만 특별한 사연이나 애착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저 놀림을 많이 받는 이름이었다. 바꾼 지 어느덧 5년이 흘렀으니... 이번 글은 내 개명에 대한 회고록 정도가 되겠다. 초등학교 시절, 정확히 2학년 담임 선생님의 '놀림' 덕에 내 이름이 놀림거리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동네 복덕방에서 대충(?) 지어오셨다는 그 이름으로 한평생을 살기에는, 지금 생각해 보면 참 버거운 짐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흔한 이름은 아녔기에 다른 사람에게 ..
2024. 11. 4. -
소소하고 무덤하게, 오답의 기록
[33글] '오답의 기록'이라는 블로그 제목을 지으면서 처음부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쓰는 내용에도 그만큼 부담을 가지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목적 자체가 삶의 헛발질들을 소소하고 무덤하게 오래 쓰려고 만든 것이니 '오답의 기록'이란 이름은 딱 적당했다. 블로그를 다시 열면서 나와 주변의 변화도 조금 있었는데, 생활 속 글감을 계속 찾으며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는 점과 아내와 첫째 아이가 나를 따라 블로그를 오픈했다는 점이다. 최근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아내는 나름의 실험적인 글쓰기를 블로그를 통해 시작했고, 첫째도 자기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제를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 모두 이 블로그로 시작된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나중에 둘째도 블로그를..
2024. 11. 4. -
밤티라미수컵
[32글] 요 며칠 우리 집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푹 빠져 있었다. 지난 주말에 함께 정주행을 시작했는데 주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빼고 챙겨본 터라 나는 초반부와 마지막 편만 시청했다. 배신자들...! 그리고 오늘 아침, 모처럼의 가족 산책을 나섰다가 편의점에 들렀는데 흑백요리사 우승자 나폴리 마피아가 모 편의점에 출시한 '밤티라미수컵'을 발견했다. 첫째는 잔뜩 흥분하여 '나폴리 마피아가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인 밤티라미수인데... 와~ 이거 맛보고 싶었는데... 이게 편의점에 출시했을 줄이야... 이거 사면 안돼요? 네네?' 쫑알쫑알 댔다. 그래 한번 맛보자며 들고 나왔는데, 한 컵으로 네 식구가 정신없이 나눠 먹었다. 그리고 산책 후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를 사서 집으로 왔다. 검색해 보..
2024. 11. 4. -
자전거 가르치기
[31글] 지금은 초등학교 졸업반이 된 첫째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가을 즈음,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쳤다. 나도 8살에 아버지로부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기에 내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처음 시도한 날, 첫째는 싱거우리만치 30분 만에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는 신세계를 경험하듯 여기저기 신나게 누비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네 발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고 배운 자전거라 얼마 안 가 제대로 된 새 자전거를 사주고, 보조 바퀴를 다시 달아 동생에게 물려줬다. 둘째는 보조 바퀴를 늦게까지 달고 탔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마른 체형의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까지도 네 발 자전거 타기를 버거워했다. 다리에 힘이 안..
2024. 11. 3. -
맞춤법에 진심인 편
[30글] 글을 쓸 때 맞춤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게 아니더라도 글은 쓰는 이의 생각과 스스로를 표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첫인상 같은 느낌이랄까. 일전에 '이 사람,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야'라고 소개받으며 받아본 글에 오탈자가 여럿 눈에 띄는 경우가 있었다. 신뢰도가 확 떨어졌다. 실수가 아닌 습관적인 오탈자들을 눈에 밟혀, 그 전문가의 수준을 대충이라도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에게 보이는 글을 쓸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가 학교에서 빌려온 맞춤법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으며 문제 내기를 했다. 내심 자신 있던 나였지만 '어른도 헷갈리는 맞춤법' 파트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문제의 20%는 틀린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평생 이 ..
2024. 11. 3. -
궁금한 건 못참아
[29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러는 건 아니고 전자기기 쪽에서 유난히 그런 기질이 드러난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브랜드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출시 전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 마우스나 키보드도 쥐어보고, 두드려봐야 직성이 풀리고, 휴대폰도 들어보고 눌러봐야 해소된다. 헤드폰, 이어폰도 그렇다. 얼마 전 애플에서 에어팟4 ANC 모델이 출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시하는 날 아침, 코스트코로 바로 달려가 덜컥 구매부터 했다. 이어폰의 경우, 인이어는 귀가 답답하고 가려워 오픈형 이어폰을 선호하는데, 오픈형은 귓구멍이 큰 관계로 입만 크게 벌려도 턱관절 움직임에 이어폰이 툭 빠져버린다. 사전에 구매한 많은 유튜버의 리뷰 콘텐츠를 봤지만 귓구멍이 큰 유튜버는 없는지 모두 잘 맞는다 ..
2024. 11. 1. -
저장의 습관화
[28글] 월말이 되면 온갖 정산 건으로 정신이 없다. 받을 돈, 줄 돈을 엑셀로 정리하느라 월의 마지막 일주일은 밥때를 챙기기 힘들 정도다. 10월의 마지막 날, 여느 때처럼 바쁜 가운데 노트북이 버벅대더니 ‘툭‘ 블루스크린이 떠버렸다. 심장도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하다.오류라니, 오류라니! 서둘러 노트북을 재시동 후 파일을 확인하니, 저장하는 것도 잊고 한창 피치를 올리며 작성하던 엑셀 수식이 온데간데없다. 30분 분량 가까운 업무가 사라졌다. 한 번에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어떤 문서의 어떤 내용까지 업데이트가 되었는지 기억이 뒤엉켜 버렸다. 낭패다. 업무 리스트를 다시 확인하고 아까 그 자리까지 돌아가는데 1시간을 더 써야 할 판이다. 오늘 새삼 깨닫는다. 사무직의 만고불변의..
2024. 10. 31. -
단점을 먼저 보는 사람
[27글]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거나 혹은 소홀해지거나 하는 계기들이 있다. 보통 사소하게 던지는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나 의례 던지는 평소 인사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나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고, 이렇게 그에 대한 경험치가 누적되면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성격, 태도, 관점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시비라도 걸듯 '살이 쪘네? 관리 안 하냐?', '염색 좀 해라, 머리가 그게 뭐냐?', '그 안경 좀 쓰지 마, 만화 캐릭터 같아' 등의 말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친근감의 표시? 아니다, 그런 사람의 부류는 앞으로도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그런 태도로 대하는 부류의 사람일 뿐이다. 단점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 있다. '넌 이게 문제야..
2024. 1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