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바람

2024. 11. 19.

[51글]

 

그제 내린 비로 마른 가지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남은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젖은 땅에 들러붙은 낙엽을 떼어내느라 아침부터 아파트 앞을 청소하시는 여사님들의 비질 소리가 분주하게 들린다.

 

11월이고 비도 내렸지만 생각보다 안 춥다 싶었는데,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올라와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훅 들이친다. 아이들이 다니는 아파트 맞은편 초등학교 건물이 눈에 보이자 꼬맹이들은 단디 입고 갔나 걱정을 잠시 했다가 마침 어제 새로 산 패딩을 입혀 보냈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안심이 됐다.

 

오늘 부는 바람은 그리 세지 않지만 겨울이 물씬 담겨있다. 문 앞을 나설 때 '헙!'하고 숨을 잠시 멎게 하는, 춥다기보다 뚝 떨어진 기온으로 놀람에 가까운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딱 그 정도의 상쾌한 겨울바람이다.

 

 

 

출근해서 하늘을 올려다보니 건물과 건물 틈 사이로 구름이 빠르게 흘러간다. 저 위에는 바람이 많이 부는구나 싶다가 갑자기 윤동주의 시 '자화상'이 떠올랐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이 바쁜 와중에 웬 감상적?'이냐며 자책하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요즘의 계절 변화는 간절기 옷을 꺼내 놓으면 도대체 입고 나갈 틈을 주지 않는다. 오늘 바람만큼의 적당한 속도로 겨울도 천천히 오면 좋겠다. 조금만 욕심내서 이 날씨로 딱 일주일만 머물렀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