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투성이의 삶이지만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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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 1년
[21글]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자정이 넘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오늘이 이직한 회사에서 꼭 1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이란 시간. 큰 의미 부여를 하기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말 바쁘게 살아온 나에게 '한 해 동안 수고했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웃프게도 종일 바쁘게 보내느라 1주년이라는 것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1년 전, 감사하게도 추천을 받아 좋은 기회로 중견 광고회사에 들어왔다. 그간 쌓아오던 커리어를 잘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업무, 지난한 결재 과정과 기다림, 부지불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업무요청, 꿈에서도 나오는 엑셀 작업 등이 몹시도 힘에 부쳤다. 처음 6개월간은 때려치울까도 고민했지만, 40대의 이직은 쉽지 않기..
2024. 10. 24. -
직장인의 일탈
[20글] 얼마 전, 점심시간에 팀장과 팀원 셋을 데리고 한강을 간 적이 있다. 평일에 이렇게 점심 나들이를 하는 게 처음이라며 마냥 신이 났나 보다. 부서장하고 나왔으니 조금 늦게 들어가도 뭐라 할 사람도 없겠다... 둔치 근처의 편의점에서 간식까지 사 먹으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속 아주 작고 귀여운 일탈. 몇 년 전만 해도 간간히 한강도 나오고, 저녁에 술 한잔을 하거나 주말에 집에 초대해 밥도 먹고 그랬다. 이제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다 뭐다 해서 이런 제안들이 소위 '강제'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라 함부로 어딜 가자, 밥을 먹자 하는 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직급이 높은 것도 한몫하겠지만. 회사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삶의 ..
2024. 10. 23. -
30일의 밤
[19글] 예전에 MCU가 '로키'를 통해 멀티버스 세계관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 기대가 컸던 나는, 정작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뭔가 정리되지 않는 흐름에 결국 이해하기 반, 오류찾기 반의 느낌으로 겨우 시즌 1을 마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이번에 정주행 하게 된 '30일의 밤'. 진정한 영화적 멀티버스를 이해하려면 이 '30일의 밤'을 꼭 시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들숨날숨 한번에 에피소드 한편씩 쉴 새 없이 몰아치며 감상했다. 올해 최고의 OTT 드라마, 아니 어쩌면 인생작으로 꼽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선택이 항상 옳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훗날 그 선택들이 온전한 나로서 완성되어 가는 모든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나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게 될까. 늘 3인칭 시점으로..
2024. 10. 23. -
개명
[18글] 첫째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잘 짓는다는 작명소를 찾아 아이 이름을 부탁했다. 남자아이 이름 같았지만 불만없이 OO이라는 이름을 받고 쓴 지 3년이 되었을 때, 둘째가 태어나 같은 작명소에 이름을 또 부탁했다. 작명가가 대뜸 하는 말이 "OO 어떤가요?"란다. 첫째 이름도, 둘째 이름도 OO? 어이가 없었다. 그 작명가를 통해서 이름을 지은 많은 아이들이 성의 없이 던진 OO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 결국 둘째 이름은 내가 짓고, 언젠가 첫째가 원할 때 이름을 바꿔주기로 했다. 코로나 시기, 집에서 줌 수업을 하는데 딸아이 앞으로 보내오는 교구들이 죄다 파란색이었다.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은 분홍색을 받았단다. 문화센터 같은 곳의 수업을 신청해도 마찬가지, 선생..
2024. 10. 15. -
정년이
[17글] 역사극을 좋아하는 첫째가 며칠 전부터 호들갑이었다. 눈물콧물 쏟으며 너무도 재미있게 본 '미스터션샤인'에서 주연을 맡았던 김태리 배우가 드라마를 새로 시작하는데, '역사와 관련된 이야기니까 봐도 되는 거죠?'라며 간절한 눈빛으로 허락을 기다렸다. 영화를 좋아하는 첫째는 미스터션샤인을 비롯해 광해, 천문, 자산어보, 말모이, 아이캔스피크 등을 보면서 다양한 시대의 역사극에 관심이 제법 많아졌는데, 이번에 보고 싶은 드라마는 '정년이'란다. 처음에 무슨 내용인지는 몰랐지만 역사적 사실을 다룬다길래 허락을 하고, 주말에 가족이 함께 본방송 첫 화를 시청했다. 첫 화는 내가 더 흥미롭게 시청했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인데, 작가는 어떻게 '국극'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선택하게 되었을까 하는 ..
2024. 10. 15. -
연봉인상 부적
[16글] 출근 전, 딸내미가 '아빠에게 줄 선물이 있어요'라며 부적 한 장을 건네주었다. 직접 만든 '연봉인상' 부적이란다. 뒷면에는 '돈이 올라, 연봉인상' 메시지가 가득 쓰여 있다. 분명 '아빠가 좋아하겠지? 히히' 이러면서 만들었을 게 뻔했다. 왜 아빠가 연봉이 올랐으면 좋겠냐는 물음에, 힘들게 일하니 연봉을 많이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단다. 기특한 녀석. 언젠가 책에서 '돈을 좇지 말고, 일을 좇아야 한다'라고 쓰여있던 걸 본 적이 있다. 일을 좇다 보면 돈은 따라붙는다고. 이 문구는 내가 업과 커리어를 대하는 기본 자세가 되었다. 그래서 지난 회사에서 3년이나 연봉이 동결되었지만 나름의 대의(?)를 품고 있었던지라 회사 주머니 사정까지 걱정하며 묵묵히 일만 보고 살았던 적이 있다. 그 선택과 ..
2024. 10. 11. -
쏘울시티 강릉
[15글] 1년에 한 번, 꼭 강릉에 방문한다. 강원도와의 인연은 군생활을 했던 속초에서 시작했다. 속초에는 서울에서 양양까지 고속도로가 뚫리기 전부터 최근까지 숱하게 방문했지만 이상하게도 방문자 이상의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아무 연고도 없는 강릉은 편안한 우리 동네 느낌이라 좋다. 올해는 이직 후 바쁜 통에 아직 여름휴가도, 강릉도 가지 못하다가 지난 추석 마지막 날이 돼서야 이래서는 안 되겠다며 강릉 안목해변으로 내달렸다. 이제 함께 여행 다니는 걸 조금 귀찮아하게 된 초등학교 고학년 녀석들이 아직은 바다에 발 담그는 걸 좋아해서 군말 없이 아빠가 가자는 강릉으로 잘 따라와 줬다. 고작 하루 반나절의 빠듯한 일정을 번개같이 계획하고, 서둘러 당도한 강릉의 안목해변은 여전히 푸..
2024. 10. 10. -
무취향이 어때서
[14글]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아내와 산책을 나간다. 천을 따라 이어지는 산책길을 쭉 걸으며 서로의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눈다. 어느 날, 아내는 자기가 너무 취향이 없이 산 것 같아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음악도 그냥 나오는 대로, 영화도 그냥 틀면 나오는 것으로, 사람도 오다가다가 마주치고 헤어지는 대로 살았다는 말이다. 애써 매달리거나 피하지 않은 것일 뿐인데 '취향이 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난 호불호가 확실한 편이다. 스무 살 때 처음 들은 박정현 누님의 목소리는 아직도 나에게 원톱이고, 공포영화는 죽었다 깨나도 보지 않고, 내 사람과 아닌 사람의 선이 분명하다. 사람을 가리는 걸 취향이라고 말하는 게 좀 이상하긴 하지만, 좋고 싫음이 분명한 게 특별히 좋았던 기억은..
2024. 10. 9. -
자동차 액땜
[13글] 새 차를 산 지 오늘로 꼭 1년이 되었다. 새 회사로 이직하기 직전에 7년 정도 몰았던 경차를 팔면서 고심 끝에 안전을 생각해 같은 브랜드의 SUV로 골랐다. 경기도 외곽에서 매일 고속도로로 출퇴근하다 보니 안전상 경차는 좀 불안했던 터였다. 그동안 운전을 하면서 자잘한 사고는 몇 번 있었지만, 차를 바꾼 지 6개월쯤 된 올해 4월, 내 뒤에서 정신 놓고 운전하던 마세라티에 크게 받혀 차 트렁크 문짝과 범퍼를 새로 갈고, 난 3개월 간 한방병원을 다녔었던 게 그간의 사고 중 가장 컸던 것 같다. 며칠 전 갑자기 타이어 경고음이 울려서 흠칫 놀랐다. 3개월 전에 오른쪽 뒷바퀴에 칼날 같은 요철이 박혀 타이어를 수리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꽤 비싼 돈을 주고 '불빵꾸'라는 걸 했다. 찢어진 타이어를..
2024. 10. 9. -
질투와 반목
[12글] 원래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즐겨보는 편이었다. 다음 편이 나올 때까지 전전긍긍 기다리는 게 싫어서. 그런데 OTT의 선풍적인 인기 때문인지 호흡은 길지만 잘 만든 드라마들이 속속 나오면서 괜찮은 작품들을 골라보게 되었다. 최근 시청한 드라마가 '백설공주에게 죽음을-Black Out'이다. 무용한 것을 좋아하는 김희성.. 아니 변요한 배우를 좋아하기도 해서 그가 출연하는 작품을 빼놓지 않고 보는데 이번 드라마도 사실 그 때문에 시작하게 연유도 있다. 배우들의 연기력에 대비해 연출의 빈틈들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내용 상으로는 더없이 훌륭했다. 드라마 전체를 관통하는 '질투와 반목'이라는 키워드가 회차를 거듭할수록 더욱 짙게 드러나며, 각자의 이기(利己)로 점철된 인간 군상들이 어디까지 비열..
2024. 10. 7. -
커피 머신
[11글] 매일 아침 루틴이 있다. 일어나자마자 모자를 눌러쓰고 8시 정각에 오픈하는 집 앞 메가커피에서 따뜻한 아메리카노 두 잔을 사 온다. 출근 준비를 하면서 홀짝거리다 출근할 때 텀블러에 옮겨 담아 나오면 운전해서 회사에 도착하기 전까지 딱 적당히 다 마실 수 있다. 회사에 도착해 사내 카페에서 차가운 아메리카노를 사서 자리에 앉아 업무를 시작한다. 이게 나의 평일 아침 루틴이다. 며칠 전, 이렇게 한 달 동안 마시는 사서 커피 값이 적지 않음을 깨닫고 커피 머신을 들이는 것을 고민했다. 원두만 넣으면 내려주는 머신을 살까, 예전에 쓰던 구형 네스프레소를 꺼내서 쓸까 하다가 와이프가 어디선가 체험을 하고 만족스러웠다던 네스프레소 버추오를 사 보기로 했다. 마음먹은 김에 네스프레소 매장이 있는 ..
2024. 10. 4. -
강원도 철원
[10글] 한동안 일 때문에 쉬는 날을 쉬는 날 답지 않게 보내다가 이번 개천절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까운 곳이라도 나들이를 가자고 마음먹었다. 와이프가 한탄강에 가보잔다. 찾아보니 철원이 의정부에서 1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철원은 처음이라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는 않아서 일단 '드르니 마을'로 가기로 했다. 느지막한 아침, 서둘러서 철원으로 출발했다. 오늘이 휴일이고, 여기가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곳이라는 걸 모른 체 출발한 바람에 엄청난 교통체증을 감당해야 했다. 점심시간 즈음 도착해 올려다본 하늘은 정말이지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어주는 완벽한 가을하늘이다. 이런 하늘이라면 교통체증 따위는 얼마든 감당할만한 하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은, 오..
2024. 10. 4. -
폐자전거
[9글] 아파트 엘리베이터 공지문에 '폐자전거 매각 안내문'이 붙어 있다. 아파트에 입주한 지 10년 정도 되었는데 이번이 두 번째 수거다. 통행이 어려울 만큼 통행로와 자전거 주차구역에 자전거가 꽉 차면 이렇게 작정하고 수거하는 모양이다. 폐자전거 상태를 보면 거의 버려지다시피 해서 녹과 먼지가 켜켜이 쌓여있다. 이 자전거들은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 준 자전거였을 것이다. 초등학교 입학을 축하하는 할머니의 선물이었을 수도, 새 직장의 출퇴근용 자전거였을 수도, 온 가족 라이딩을 함께 했던 자전거였을 수도 있다. 나름의 추억들이 담겨 있을 자전거가 이제 아무도 찾지 않는 고물이 되어 곧 폐기처분 당할 처지가 되었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공지를 못 봤을 수도 있으니 폐기되기 전에 찾아가라는 마..
2024. 10. 2. -
두통
[8글] 아침부터 시작된 두통에 하루종일 시달렸다. 오전에 보고미팅이 있었는데 이것 때문에 신경을 썼는지 회의가 끝나고 난 후 간단하게 점심을 한 이후부터 계속 머리가 아팠다. 보통 식체를 하면 두통이 와서 내려가면 괜찮으려니 했다. 되려 두통이 심해져 도무지 업무를 할 수가 없을 정도가 되자 오후 6시가 넘어 칼같이 퇴근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한테 꽤 잘 듣는 두통약 두 알을 얼른 삼켰다. 경험 상 30분에서 1시간 정도면 두통이 멎는다. 체해서 온 두통일 경우에는 두통이 계속되는데, 약을 먹고 1시간쯤 지나자 묵지근한 두통이 서서히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체한 건 아니구나... 진통제 두 알이면 해결될 것을 하루종일 버텼다니 좀 한심했다. 두통이 사라지자 급 찾아오는 허기. 따끈한 라면 한 사발..
2024. 10. 1. -
휴일 나들이
[7글] 국군의 날 휴일이다. 엄마는 첫째와 이모를 만나러 가고, 나는 둘째와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처음에는 엄마를 따라가겠다고 하다가 아빠랑 회사를 가자는 제안에 금방 변심해서 아빠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건물이 무슨 건축상을 받았는데, 건축가가 꿈인 둘째에게 이런 제안이 솔깃했나 보다. 아빠와의 휴일은 출근반, 나들이반이 됐다. 둘째가 사무실 이곳저곳을 구경하는 동안 어제 못 끝낸 업무를 후다닥 마무리했다. 회사 근처 햄버거 가게에서 점심을 먹으며 회사 건물은 어땠냐 물어보니 바깥보다 사무실 공간이 재미있었단다. 학교 교무실에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그리고는 사무실에 들어와 집에서 챙겨 온 닌텐도 스위치를 신나게 즐기는 중이다. 그렇게 난 오..
2024. 10. 1. -
바보 가을
[6글] 올해 여름은 너무나 길었다. 계절이 지나는 것을 체감하는 모먼트가 있는데, 추석 때마다 장인어른 댁이 있는 서산에 가면 주변 논에서 가을걷이가 슬슬 시작되는 게 한눈에 보인다. 저녁때가 되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기 딱 좋은 날씨다'라며 삼겹살을 사러 나기도 한다. 나름 가을임을 느끼는 순간이다. 비로소 가을이 왔구나, 금방 또 추워지겠다... 는 말이 자연스레 나오는데, 달력의 날짜만 가을이지 이번 추석은 정말이지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역대급 날씨였다. 여름이 길었다기보다 가을이 여름 탈을 뒤집어 쓴 느낌에 가깝다. 추석이 끝난 주말에 이틀 비가 오더니 가을이 제정신을 차렸는지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추워졌다. 덕분에 온 가족이 환절기 감기에 걸렸지만 제대로 된 가을이 온 것..
2024.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