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투성이의 삶이지만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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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하고 무덤하게, 오답의 기록
[33글] '오답의 기록'이라는 블로그 제목을 지으면서 처음부터 큰 의미를 두지 않았다. 뭔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면 쓰는 내용에도 그만큼 부담을 가지게 될 게 뻔했기 때문이다. 목적 자체가 삶의 헛발질들을 소소하고 무덤하게 오래 쓰려고 만든 것이니 '오답의 기록'이란 이름은 딱 적당했다. 블로그를 다시 열면서 나와 주변의 변화도 조금 있었는데, 생활 속 글감을 계속 찾으며 꾸준히 관찰하고 있다는 점과 아내와 첫째 아이가 나를 따라 블로그를 오픈했다는 점이다. 최근 글을 써야만 하는 상황에 놓인 아내는 나름의 실험적인 글쓰기를 블로그를 통해 시작했고, 첫째도 자기와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주제를 글로 써 내려가고 있다. 모두 이 블로그로 시작된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나중에 둘째도 블로그를..
2024. 11. 4. -
밤티라미수컵
[32글] 요 며칠 우리 집은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 푹 빠져 있었다. 지난 주말에 함께 정주행을 시작했는데 주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나를 빼고 챙겨본 터라 나는 초반부와 마지막 편만 시청했다. 배신자들...! 그리고 오늘 아침, 모처럼의 가족 산책을 나섰다가 편의점에 들렀는데 흑백요리사 우승자 나폴리 마피아가 모 편의점에 출시한 '밤티라미수컵'을 발견했다. 첫째는 잔뜩 흥분하여 '나폴리 마피아가 흑백요리사에서 선보인 밤티라미수인데... 와~ 이거 맛보고 싶었는데... 이게 편의점에 출시했을 줄이야... 이거 사면 안돼요? 네네?' 쫑알쫑알 댔다. 그래 한번 맛보자며 들고 나왔는데, 한 컵으로 네 식구가 정신없이 나눠 먹었다. 그리고 산책 후 돌아오는 길에 또 하나를 사서 집으로 왔다. 검색해 보..
2024. 11. 4. -
자전거 가르치기
[31글] 지금은 초등학교 졸업반이 된 첫째 딸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가을 즈음, 두 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쳤다. 나도 8살에 아버지로부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웠기에 내 아이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두 발 자전거 타기를 처음 시도한 날, 첫째는 싱거우리만치 30분 만에 자전거 타기를 배우고는 신세계를 경험하듯 여기저기 신나게 누비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네 발 자전거의 보조 바퀴를 떼고 배운 자전거라 얼마 안 가 제대로 된 새 자전거를 사주고, 보조 바퀴를 다시 달아 동생에게 물려줬다. 둘째는 보조 바퀴를 늦게까지 달고 탔다. 우리 집에서 가장 마른 체형의 둘째는 초등학교 1학년까지도 네 발 자전거 타기를 버거워했다. 다리에 힘이 안..
2024. 11. 3. -
맞춤법에 진심인 편
[30글] 글을 쓸 때 맞춤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대단한 글을 쓰는 게 아니더라도 글은 쓰는 이의 생각과 스스로를 표현하는 도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의 첫인상 같은 느낌이랄까. 일전에 '이 사람, 이 분야에서는 전문가야'라고 소개받으며 받아본 글에 오탈자가 여럿 눈에 띄는 경우가 있었다. 신뢰도가 확 떨어졌다. 실수가 아닌 습관적인 오탈자들을 눈에 밟혀, 그 전문가의 수준을 대충이라도 짐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남에게 보이는 글을 쓸 때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 첫째가 학교에서 빌려온 맞춤법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으며 문제 내기를 했다. 내심 자신 있던 나였지만 '어른도 헷갈리는 맞춤법' 파트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문제의 20%는 틀린 것 같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평생 이 ..
2024. 11. 3. -
궁금한 건 못참아
[29글]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다. 모든 분야에서 그러는 건 아니고 전자기기 쪽에서 유난히 그런 기질이 드러난다. 좋아하고 관심 있는 브랜드에서 신제품이 나오면 출시 전부터 몸이 근질근질하다. 마우스나 키보드도 쥐어보고, 두드려봐야 직성이 풀리고, 휴대폰도 들어보고 눌러봐야 해소된다. 헤드폰, 이어폰도 그렇다. 얼마 전 애플에서 에어팟4 ANC 모델이 출시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출시하는 날 아침, 코스트코로 바로 달려가 덜컥 구매부터 했다. 이어폰의 경우, 인이어는 귀가 답답하고 가려워 오픈형 이어폰을 선호하는데, 오픈형은 귓구멍이 큰 관계로 입만 크게 벌려도 턱관절 움직임에 이어폰이 툭 빠져버린다. 사전에 구매한 많은 유튜버의 리뷰 콘텐츠를 봤지만 귓구멍이 큰 유튜버는 없는지 모두 잘 맞는다 ..
2024. 11. 1. -
저장의 습관화
[28글] 월말이 되면 온갖 정산 건으로 정신이 없다. 받을 돈, 줄 돈을 엑셀로 정리하느라 월의 마지막 일주일은 밥때를 챙기기 힘들 정도다. 10월의 마지막 날, 여느 때처럼 바쁜 가운데 노트북이 버벅대더니 ‘툭‘ 블루스크린이 떠버렸다. 심장도 '툭'하며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 듯하다.오류라니, 오류라니! 서둘러 노트북을 재시동 후 파일을 확인하니, 저장하는 것도 잊고 한창 피치를 올리며 작성하던 엑셀 수식이 온데간데없다. 30분 분량 가까운 업무가 사라졌다. 한 번에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니 어떤 문서의 어떤 내용까지 업데이트가 되었는지 기억이 뒤엉켜 버렸다. 낭패다. 업무 리스트를 다시 확인하고 아까 그 자리까지 돌아가는데 1시간을 더 써야 할 판이다. 오늘 새삼 깨닫는다. 사무직의 만고불변의..
2024. 10. 31. -
단점을 먼저 보는 사람
[27글] 사람과의 관계가 돈독해지거나 혹은 소홀해지거나 하는 계기들이 있다. 보통 사소하게 던지는 말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오랜만에 만났을 때나 의례 던지는 평소 인사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나에 대한 태도를 알 수 있고, 이렇게 그에 대한 경험치가 누적되면 무의식에서 비롯되는 성격, 태도, 관점 등을 알 수 있게 된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시비라도 걸듯 '살이 쪘네? 관리 안 하냐?', '염색 좀 해라, 머리가 그게 뭐냐?', '그 안경 좀 쓰지 마, 만화 캐릭터 같아' 등의 말을 던지는 이들이 있었다. 친근감의 표시? 아니다, 그런 사람의 부류는 앞으로도 나에게, 또는 누군가에게 그런 태도로 대하는 부류의 사람일 뿐이다. 단점을 먼저 보는 사람들이 있다. '넌 이게 문제야..
2024. 10. 31. -
오블완 챌린지
[26글] 오랜 시간 네이버, 브런치, 심지어 워드프레스로 블로그까지 구축해 가며 블로그를 운영했다가 개점휴업(?) 상태로 방치한 블로그가 꽤 된다. 소싯적에는 네이버 파워블로거가 되어 왕성한 활동을 하기도 했지만, 이쪽 분야가 내 업이 되면서 정작 내 글을 안 쓰게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기도 했다. 우리 집 꼬맹이들에게 글쓰기의 중요성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내가 글을 쓰지 않는다니... 그래서 매일 글쓰기를 실천하고자 가벼운 마음으로 블로그를 다시 쓰기 시작한 지 갓 한 달을 넘기는 중이다. 적당한 글감을 찾기 힘든 요즘, 간만에 글감 하나를 찾아 블로그에 들어오니 '오블완 챌린지'를 시작한다는 공지가 떠 있다. 마침 블로그도 다시 시작했겠다... 이거 완전 아다리가 착착 맞는 느낌!? 공지를 확인하..
2024. 10. 30. -
설렁탕의 계절
[25글] 내가 나이를 먹긴 먹었구나... 문득 깨닫게 될 때가 종종 있다. 얼죽아를 달고 살던 내가 웬만하면 따뜻한 커피를 마시고, 떡볶이, 햄버거 같은 음식보다 뼈해장국, 갈비탕, 삼계탕, 순댓국 같은 국물 있는 음식을 찾게 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할 때면 새삼 '나이 먹음'이 느껴진다. 오늘 날도 우중충하니 나잇값을 하려는 듯 설렁탕이 몹시도 당겼다. 그래서 회사 상무님을 꼬드겨 설렁탕을 먹으러 나섰다. 상무님은 음식의 호불호가 강해 꼭 가서 먹어야 하는 곳으로만 가는 양반이라 멀리 가는 게 귀찮고 피곤하지만, 그와의 식사는 내 카드를 안 쓰므로 매우 환영이다. 설렁탕만 먹어도 되는데, 수육까지 주문했다. 이걸 다 먹으면 오후에 밀려오는 졸음과의 한판승부가 예상됐지만, 수육은 못 참지! 절인 ..
2024. 10. 29. -
출근길 엔딩
[24글] 자차로 출퇴근을 하다 보면 길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퇴근길은 선택이 좀 쉬운데, 막히는 시간이면 강변북로-구리포천고속도로 루트로, 안 막히는 시간이면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의정부로 들어간다. 출근길은 강변북로에서 강남으로 진입하는 세 가지 루트가 있다. 영동대교, 성수대교, 한남대교. 어느 다리로 건너는지에 따라 도착시간이 확연이 달라진다. 영동대교는 진입구간에 2km 가까이 차들이 늘어서 있다. 그래서 좀 야비하지만 살살 달리다가 정신줄 놓고 있는 차가 있으면 그 사이로 살짝 들어가면 세이프. 진입금지 구간에서 들어갔다가 딱지를 두 번 떼보고 그 이후로는 무리하지 않은 선에서 나이스하게 끼어들 수 있는 경우에만 들어간다. 빡빡하게 빈틈이 없어서 무리겠다 싶을 때는 과감히 성수대교로..
2024. 10. 28. -
사람의 중요성
[23글] 회사 건물에는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라는 시가 걸려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있는 광고업은 기획력과 창작력을 요하는 업이지만, 프로젝트의 수만큼이나 투입하는 인력도 매우 중요하다. 하고 싶어도 진행할 수 있는 인력이 없어서, 경험자가 없어서 드롭되는 프로젝트도 있다. 제안을 할 때 회사가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지를 인력 보유 규모로 판단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에 정현종 시인의 시는 광고회사 현판에 걸려있기에 가장 적합한 문구가 아닐까 싶다. 이쪽 업계는 퇴사와 입사가 잦은 곳이다. 이쪽 업계에서 몇 회사를 다녀본 경험 상 업무량이 많아서, 잦은 야근 때문에, 광고주의 지나친 갑질 등 업의 특성으로 인해 회사..
2024. 10. 26. -
태권도 보내기
[22글] 아이들이 어릴 때 태권도 학원을 보내려고 무던히 애쓰던 때가 있었다. 나도 어릴 적에 태권도를 배우러 다녔기에 우리 아이들도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다니게 하고 싶어서 온갖 감언이설(?)로 꼬셨지만 말을 듣지 않았다. 누구 닮아 그리 고집이 센지. 그러던 어느 날, 당시 초등학교 3학년 둘째가 이제 슬슬 태권도를 다녀야겠다며 학원 좀 알아봐 달라는 요청(?)에 집 근처 태권도장을 알아보고 보내기 시작했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둘째는 태권도에 제법 열심이다. 무슨 대회가 열리니 보내달라고도 하고, 집에서는 수시로 다리찢기와 발차기, 품새를 시전한다. 가끔은 "유치원 때 시작할 걸, 그랬으면 지금은 1품을 땄을텐데..." 하고 후회도 한다.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은 지난 번 철원 주상절리길..
2024. 10. 24. -
이직 1년
[21글] 바쁜 하루를 보낸 후 자정이 넘어갈 때쯤이 되어서야 오늘이 이직한 회사에서 꼭 1년이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1년이란 시간. 큰 의미 부여를 하기보다 그 어느 때보다 정말 바쁘게 살아온 나에게 '한 해 동안 수고했어'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웃프게도 종일 바쁘게 보내느라 1주년이라는 것도 완전히 잊고 있었다. 1년 전, 감사하게도 추천을 받아 좋은 기회로 중견 광고회사에 들어왔다. 그간 쌓아오던 커리어를 잘 이어갈 수 있어 다행이었지만, 경험해보지 못했던 생소한 업무, 지난한 결재 과정과 기다림, 부지불식간에 치고 들어오는 업무요청, 꿈에서도 나오는 엑셀 작업 등이 몹시도 힘에 부쳤다. 처음 6개월간은 때려치울까도 고민했지만, 40대의 이직은 쉽지 않기..
2024. 10. 24. -
직장인의 일탈
[20글] 얼마 전, 점심시간에 팀장과 팀원 셋을 데리고 한강을 간 적이 있다. 평일에 이렇게 점심 나들이를 하는 게 처음이라며 마냥 신이 났나 보다. 부서장하고 나왔으니 조금 늦게 들어가도 뭐라 할 사람도 없겠다... 둔치 근처의 편의점에서 간식까지 사 먹으며 여유를 부리기도 했다.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점프를 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 속 아주 작고 귀여운 일탈. 몇 년 전만 해도 간간히 한강도 나오고, 저녁에 술 한잔을 하거나 주말에 집에 초대해 밥도 먹고 그랬다. 이제는 개인의 삶을 존중(?)하는 시대다 뭐다 해서 이런 제안들이 소위 '강제'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라 함부로 어딜 가자, 밥을 먹자 하는 게 적지 않은 부담이 된다. 직급이 높은 것도 한몫하겠지만. 회사도, 함께 일하는 동료도 삶의 ..
2024. 10. 23. -
30일의 밤
[19글] 예전에 MCU가 '로키'를 통해 멀티버스 세계관을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포부에 기대가 컸던 나는, 정작 에피소드를 거듭할수록 뭔가 정리되지 않는 흐름에 결국 이해하기 반, 오류찾기 반의 느낌으로 겨우 시즌 1을 마쳤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이번에 정주행 하게 된 '30일의 밤'. 진정한 영화적 멀티버스를 이해하려면 이 '30일의 밤'을 꼭 시청하라고 말하고 싶다. 정말 들숨날숨 한번에 에피소드 한편씩 쉴 새 없이 몰아치며 감상했다. 올해 최고의 OTT 드라마, 아니 어쩌면 인생작으로 꼽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선택이 항상 옳고, 성공적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훗날 그 선택들이 온전한 나로서 완성되어 가는 모든 과정이었음을 깨닫게 될 때, 나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주게 될까. 늘 3인칭 시점으로..
2024. 10. 23. -
개명
[18글] 첫째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잘 짓는다는 작명소를 찾아 아이 이름을 부탁했다. 남자아이 이름 같았지만 불만없이 OO이라는 이름을 받고 쓴 지 3년이 되었을 때, 둘째가 태어나 같은 작명소에 이름을 또 부탁했다. 작명가가 대뜸 하는 말이 "OO 어떤가요?"란다. 첫째 이름도, 둘째 이름도 OO? 어이가 없었다. 그 작명가를 통해서 이름을 지은 많은 아이들이 성의 없이 던진 OO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 짜증이 밀려왔다. 결국 둘째 이름은 내가 짓고, 언젠가 첫째가 원할 때 이름을 바꿔주기로 했다. 코로나 시기, 집에서 줌 수업을 하는데 딸아이 앞으로 보내오는 교구들이 죄다 파란색이었다.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은 분홍색을 받았단다. 문화센터 같은 곳의 수업을 신청해도 마찬가지, 선생..
2024. 10.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