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경험이 주는 것

2024. 11. 10.

[42글]

 

살면서 참 많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한번쯤 해봤음직한 것도 좀처럼 기회가 되지 않아서 처음 겪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음식의 경우 갑자기 유행을 타는 두바이 초콜릿 같은 생소한 음식이 아닌 이상 누구나 먹어봤음직한 것도 '내가 왜 이걸 처음 먹어보는 거지?' 하는 의외의 경험들이 그렇다.

 

'대한민국 이 좁은 땅덩어리에 여기를 처음 가본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일부는 유명한 지역이라 일부러 찾아가기도 할 만 한데 말이다. 강원도 속초, 강릉은 숫하게 다니면서 그 아래 주문진은 재작년에 처음 가봤고, 작년에 방문한 여수도 그랬다. 아, 놀랍게도 동대문 DDP도 작년에 처음 가봤다.

 

 

 

지난주에 마포에서 광고주 미팅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노량진 수산시장에 갔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처음 와본다니 직원들이 놀란다. '넌 대체 뭐 하고 산 거냐'라는 눈빛이다. 회는 집 근처에서도 자주 주문해 먹고, 그간 다니던 회사들도 강남 언저리에서 벗어난 적도 없다 보니 딱히 연고도 없는 노량진 수산시장에 갈 일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오다가다 들렀을 만 한데... 그건 나도 신기하게 생각한다.

 

살면서 이렇게 늦은 경험들을 할 때가 있다. 매일 하는 것, 이미 해봤던 것, 뻔한 것들 사이에서 이런 소소한 늦은 경험은 루틴한 삶에 가벼운 활력을 선사한다. 마치 코끼리를 처음 본 아이의 신기함과 두려움이 조금씩 섞여있는 감정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기분 좋은 경험이지만, 애써 무언가 새롭게 경험하려는 욕심은 부리지 않고 싶다. 하긴, 세상 얼마나 살았다고 모든 경험을 다할 수 있겠나. 그저 발길 닿을 때,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소소하게. 늦은 경험의 과욕 내지는 중독 버전을 우리는 '늦바람'이라고 하던가?

 

아, 그리고 노량진 수산시장의 회는 생각보다 별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