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답투성이의 삶이지만 글쓰기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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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골 골절
[62글] 하루종일 눈발이 날리던 1월 중순 어느 날, 야근을 마친 후 회사 지하주차장 언덕길에서 넘어졌다. 그리 가파른 언덕은 아니였지만 몇 개월 전에 지하주차장 진입로를 매끄럽게 포장을 했는데, 눈이 내려 길이 얼어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오른쪽 어깨로 넘어지는 순간 '두둑' 소리와 함께 밀려오는 고통에 길바닥에 누운 상태로 소리를 질러댔다. 몇 분이나 지났을까, 어깨가 마구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급하게 회사 인근에 있는 정형외과 응급실을 찾았다. 처음에는 탈골정도로 생각했는데 의사가 엑스레이를 보더니, "어깨가 아니라 쇄골이 부러졌네요. 수술하셔야 해요"라며 마치 이 맘 때쯤은 흔하게 있는 일이라는 듯이 무심하게 말했다. 상급 병원으로 가서 수술해야 하지 않겠냐는 물음에 의사..
2025.02.09 -
2024년 마지막 바다
[61글] 새로운 회사에서 첫 1년을 보내면서 연차와 반차를 쪼개서 총 12일을 쉬었지만, 1년 내내 태풍이 몰아치는 듯한 바쁨 때문에 휴일 근무에 대한 보상 휴가가 무려 29.5개나 쌓인 채로 2024년을 마무리해야 했다. 팀원들 하나, 둘 시기에 맞춰 여름휴가를 보내고 나니 정작 여름이 지나버려 휴가다운 휴가를 쓰지 못한 채 말이다. 연말에 큼지막한 제안 2개를 쳐낸 후, 작심하고 휴가를 냈다. 어디를 갈까 와이프와 고민도 했지만, 고작 며칠 간의 휴가로 큰 마음은 먹을 수 없었기에 만만한 동해로 향했다. 기승전 동해. 이제 머리가 좀 큰 아이들은 '또 동해야?'라고 푸념 아닌 푸념을 늘어놓았지만, '아빠가 동해를 좋아하니까'라고 아이들을 설득한 와이프의 배려 덕에 휴가지를 빨리 결정할 수 있었다...
2025.01.30 -
정답의 기록
[60글] 이곳에 글을 쓰면서 언젠가 한 번쯤 '정답의 기록'이라는 글 제목을 쓸 일이 있지 않을까 했다. 이벤트처럼 말이다. 12월 3일 밤, 팀원들과 늦은 회의를 마칠 즈음 터진 비상계엄령은 회의실에 모여있는 우리를 동요시키기에 충분했던 '깜짝 이벤트'였다. 철야가 예정되어 있던 밤이었지만 이런 분위기에 일이나 할 수 있겠나 싶어 덕분에 자정을 넘기기 전에 모두 귀가할 수 있었다. TV를 잘 틀지 않는 편이지만 요 며칠 계속 뉴스채널을 틀어놨다. 내가 갓 두 살 때 터졌던 전두환 발 비상계엄은 역사책으로 본 게 다지만, 이렇게 현실로 마주하니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깊은 빡침이 계속되었다. 그 당시의 우리의 아버지 세대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TV 속에서는 연일 잘잘못을 따지는 목소리가 흐르고, ..
2024.12.16 -
고기는 언제나 옳다
[59글] 2주 동안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제안에 매달렸다. 이쯤 되면 회사의 지박령이라고 봐도 될 만큼... 지난 금요일이 되어서야 제안 PT까지 무사히 마치고 오늘만큼은 조기퇴근 하리라 마음먹었건만 그동안 고생했다며 부대표님이 회식 콜을 날리셨다. 다들 제안 끝, 조기퇴근, 불금 부스터까지 장착한 상태라 갑작스러운 회식 콜에 당황했지만 이 또한 수긍할 수밖에 없는 직장인의 삶 아니던가. 각자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 실망스럽던 와중 알게 된 소식, "오늘 회식은 '한우'래!" 사무실에 도착해 팀원들과 함께 회사 근처의 정육식당으로 향했다. PT 날은 종일 굶는 게 다반사라 고기를 보자 다들 정신 못 차리고 먹어댔다. 12명 1인당 특수부위모둠 1 접시씩, 피날레는 테이블당 살치살 1 접식씩. 이..
2024.12.01 -
오블완 완주 실패
[58글] 3주간 열심히 '오블완 챌린지'를 참여했다. 이 지옥같이 바쁜 와중에서도 10~20분씩은 꼭 할애해서 꾸준히 글을 썼는데... 하루를 앞두고 이렇게 허무하게 미션에 실패할 줄이야. 허탈한 웃음만 나온다. 이것도 추억 한 줄로 남을 수많은 오답 중 하나가 아닐까... 하며 애써 괜찮은 척해본다. 그래도 글은 계속된다. 인생의 헛발질은 좀처럼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니.
2024.11.27 -
바나나 안바나나
[57글] 정기적으로 아침마다 바나나를 들고 출근하는 팀원이 있다. 하나 두 개를 사 오는 게 아니라 8개 정도 달려있는 바나나 송이를 사 온다. 어느 날 '너는 바나나를 좋아하니?' 물으니 아침 출근길 지하철 역 앞에서 한 송이에 2,000원 밖에 안 해서 사 오게 된단다. 생각보다 싸길래 '오! 2,000원 밖에 안 해? 그럼 내 거도 사와ㅋ' 농담 삼아 던졌더니, 다음 날 아침... 메신저 메시지와 함께 책상 위에 바나나 한송이가 올라와 있다. 회사가 집에서 가까운 것도 아닌데 이걸 들고 만원 지하철을 타고 왔을 걸 생각하니 미안하고, 고맙고, 마음이 짠했다. 그저 다른 사람이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걸 보면서 뿌듯해하는 장난기 가득한 이타적인 사람. 이러니 바나나 안바나나?!
2024.11.25 -
앗! 통풍
[56글] 내가 유일하게 앓고 있는 지병이 있다. 통풍이다. 요 며칠, 철야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무릎이 욱신거린다. '아, 통풍이다. 이번엔 무릎이구나' 했다. 통풍은 조금만 무리를 하면 다리 쪽 관절에 증상이 나타나는데, 어떨 때는 발가락, 어떨 때는 발목 이렇게 대중없이 찾아온다. 특유의 느낌이 있다. 그렇게 이번에는 무릎. 예전에 통풍 발작이 있을 때 먹는 약을 처방받아 둔 걸 얼른 찾아 먹었다. 심하게 찾아왔을 때는 3주가 넘게 통풍에 시달린 적이 있는데, 운이 좋으면 반나절 정도면 증상이 사라지기도 한다. 그저 기다려보는 수밖에. 야근에, 철야에, 이번엔 통풍이라니.쉽지 않다. 쉽지 않아.
2024.11.24 -
수면 부족
[55글] 역대급이다. 광고 촬영 현장에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다 새벽에 사무실에 돌아서와 제안서를 쓴다. 하필 2개 제안의 마감일자가 단 하루 차이다. 사무실에서 팀원들은 각자 배정된 부분의 장표를 빼곡하게 채워가는 중이다. 아침 해가 뜨기 직전에 집으로 돌아와 씻고, 잠깐 머리를 대면 알람이 울려댄다. 이런 일정은 난생처음이다. 토요일 아침, 도무지 깨지 않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겨우겨우 정신을 차려 옷을 챙겨 입었다. 3일 동안 12시간도 못 잔 상태라 2차 촬영지인 파주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나 고민했지만, 눈치 봐서 차 안에서 쪽잠을 잘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며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촬영 중간에 광고주에게 양해를 구하고, 팀장에게 뒤를 부탁한다며 다시 회사로 돌아왔다. 쓰다만 제안..
2024.11.23 -
고민 많은 딸내미
[54글] 11월 11일 빼빼로데이를 하루 앞둔 주말, 딸내미와 동네 산책을 했다. 아침부터 복작거리며 한참이나 초콜릿을 만들고 학교 반 친구의 수만큼 준비를 마쳤다고 하길래, '우리 산책이나 할까?' 물으니 얼른 쪼르르 따라 나왔다. 얼마 간 걸었을까, 아이가 고민을 털어놓는다. 일전에 자기에게 상처를 준 미운 친구에게 초콜릿을 주고 싶지가 않은데 아빠 같으면 어떻게 하겠냐고 물었다. 3가지의 옵션을 주었다. 싫어도 차별하지 않고 주기, 주지 않기, 서운했던 마음을 이야기하면서 주기. 스스로 현명한 판단을 하는 것도 삶을 대하는 연습이라고 말해줬다. '아빠, 아빠 말대로 이건 제가 고민하고 결정할 문제네요. 고맙습니다.'라며 오늘 하루동안 고민하고 결정해서 결과는 내일 말해주겠다고 했다. 평소에 야..
2024.11.22 -
퇴사하는 이에게
[53글] 올해 1월 새로 비딩 하는 제안 건이 있었다. 입사한 지 3개월이 안 되었을 때라 회사 분위기도 잘 모르던 그때, TFT로 제안팀이 꾸려지면서 각 팀에서 한 명씩 차출되어 몇 사람이 제안서를 함께 쓰게 되었다. 서먹할 틈도 없이 달리던 우리들은 며칠 밤을 새하얗게 불태우며 비딩을 마친 후, 조만간 밥 한 번 먹자고 약속하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이후로 각자의 현업에 치이면서 나는 회사에 적응을 해나갔고, 그렇게 꼭 10개월이 지났다. 오늘 오후에 그때 제안에 함께 했던 제안팀 친구 중 한 명을 만났는데,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며 퇴사 인사를 건넸다. 다른 부서의 사람이라 왜, 어떤 이유로 퇴사하는지, 어디로 가는지 캐물을 위치나 관계도 아니지만, 그때 함께 치열했던 시간이 떠올라 무척 ..
2024.11.21 -
은행나무
[52글] 강남 부근 세관사거리에는 가을만 되면 은행나무 열매로 악취를 풍기는 구역이 있다. 잠시 외출을 했다가 그 길을 지나는데 '웬일로 이렇게 깔끔해?' 이러고 나무를 보니, 세상에나... 잔가지를 정리하는 수준을 넘어 참을 만큼 참았다는 듯 가지가 몽땅 잘려있다. 건물주의 우격다짐이든, 폭발하는 민원을 감당하기 힘들었던 공무원이든 누군가의 분노가 몇 남은 잔가지에 아직 서려있는 듯했다. 사무실에 돌아와 오늘은 이걸 소재로 쓸까 고민하다가 챗GPT에게 '은행나무 가지치기'로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세상에나 어떻게 이렇게 일목요연하게 잘 정리해서 글을 써내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오늘의 글은 챗GPT의 글로 갈음하기로 한다. - '은행나무 가지치기'라는 주제로 블로그 타입의 글을 써줄 수 있을까? ..
2024.11.20 -
겨울바람
[51글] 그제 내린 비로 마른 가지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남은 낙엽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젖은 땅에 들러붙은 낙엽을 떼어내느라 아침부터 아파트 앞을 청소하시는 여사님들의 비질 소리가 분주하게 들린다. 11월이고 비도 내렸지만 생각보다 안 춥다 싶었는데,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타고 올라와 창문을 여니 차가운 바람이 훅 들이친다. 아이들이 다니는 아파트 맞은편 초등학교 건물이 눈에 보이자 꼬맹이들은 단디 입고 갔나 걱정을 잠시 했다가 마침 어제 새로 산 패딩을 입혀 보냈다는 아내의 말이 떠올라 안심이 됐다. 오늘 부는 바람은 그리 세지 않지만 겨울이 물씬 담겨있다. 문 앞을 나설 때 '헙!'하고 숨을 잠시 멎게 하는, 춥다기보다 뚝 떨어진 기온으로 놀람에 가까운 감탄사가 나오게 하는 딱 그 정도의 상쾌한 겨..
202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