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18.
[72글]
2주 전쯤, 숨쉬기도 벅찬 여름 한가운데, 암묵적으로 예정되어 있던 '퇴사'를 통보받았다. 처음에는 불합리에 대한 반발로 자발적 퇴사를 생각했고 꽃 피던 봄쯤 입 밖으로도 그 말을 냈지만, 몰아치는 프로젝트 때문에 퇴사 일정 협의는 차일피일 미뤄져만 갔다. 그렇게 묵묵히 내 할 일을 해가던 중, 부서장이 수개월이 지나서야 회사는 퇴사 일정을 협의하자더니 잔여 연차까지 친절하게 계산된 퇴사일과 마지막 출근일을 통보해왔다.

원래는 3년이 조금 넘는 10월 말을 퇴사일로 희망했다. 그런데 회사의 이사 일정이 겹치면서, 회사는 번거롭게 이사까지 함께 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지금 사무실의 마지막 날인 8월 21일을 기점으로 잔여 연차 26개를 모두 소진하고 9월 말에 사직하는 일정으로 협의하자고 했다. 지인은 사측의 퇴사 일정 통보가 '부당해고' 아니냐며 나 대신 화를 내주었지만, 정작 나는 3년간 켜켜이 쌓인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것만으로도 홀가분하다. 업력 20년 중 이 회사에서의 3년만큼 힘들었던 적은 단언컨대 없었던 것 같다.
지난 3년간, 부서의 관리자로 일하며 남들 다 가는 휴가도 반납하고 기꺼이 주말 출근까지 불사하며 후회 없이 달려왔다. 광고대행사의 꽃(?)이라는 PT는 빠짐없이 들어갔고, 업력이 20년이나 된 회사임에도 여기저기 뚫려 있던 행정적인 빈틈들을 조용히 메꾸며 팀이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작은 시스템들을 하나씩 구축해온 것은 나름의 치적이다. 다만 확실히 '박수칠 때 떠나는' 모양새는 아니라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3년간 나를 정말 지치게 한 건 업무의 강도도, 잦은 주말 출근도 아니었다. 나는 일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믿어왔는데, 부서원을 그저 '일하는 도구'로만 바라보던 부서장의 사고방식을 견디는 일이 가장 버거웠다. 사람을 갈아 넣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앞에서 나는 매번 진절머리가 났다. 내가 입사했을 때부터 함께해온 부서원은 지금 20명 중 단 2명뿐이다. 나머지는 모두 그사이 이 조직을 떠났다. 그 숫자가 무엇을 말해주는지, 부서장은 아마 끝내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퇴사는 요즘 유행이라는 '조용한 퇴사'로 하기로 했다. 부서장에게는 인수인계 받을 사람과, 갑자기 사라지면 배신감을 느낄 정붙인 몇몇 아이들에게만 이야기하고 가겠다고 당부했다. 며칠간 조용히 짐을 정리해온 덕에 아직 눈치챈 사람은 없는 것 같다.
40대 후반의 퇴사가 부담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이렇게 한 텀 쉬어가며 새로운 일을 도모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제 20년간의 대행사 경력에는 마침표를 찍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3년을 이렇게 정리해본다.